이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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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JEOUNGIN

"물고기는 풍랑 속에서 가장 맹렬하게 헤엄친다."라는 이정인 작가의 작업실에 명언이 그의 작업에 좌우명이다. 그의 작품속에 묘사된 한 마리 한 마리의 물고기들은 얼마나 빛나는 힘을 가진 존재로서 헤엄치는 모습인가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또한, 그것이 인생임을 이정인은 어쩌면 치열 해야 하는 삶의 뜨거움을 물고기를 통하여 가열차게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렇게 버려진 나무를 이용해 작품을 해야만 그렇게 베어진 나무가 자기 살이 베어지는 것처럼 아팠다는 것을 공감하며 서로 위로받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의 물고기들에서 우리를 향한 간절한 눈빛을 발견한다. 작가는 그것을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처음 버려진 나무를 보았을 땐 단순한 재료에 불과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나무가 제게 말을 걸어왔어요. '난 일생 동안 보고 들은 것, 겪은 걸 모두 내 속에 품고 있어.' 전 그걸 에너지로 느꼈고 살려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이유에서든 강을 거쳐 바다까지 떠밀려온 폐목들. 모서리가 부서져 나가고, 커다란 못이 박혀 있거나 숭숭 벌레에 파 먹히고, 햇볕에 허옇게 바랜 나뭇조각들. 그는 이 못 쓰는 나뭇조각에 눈을 그리거나 붙이고, 색칠하고, 금빛 비늘을 그려 넣어 아름다운 산천어에게 생명을 부여한다.

이렇게 폐목이 되어 이리저리 구박받고 떠밀려 다녔던 세월과 상처들을 모두 품은 채 그에게로 와서야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작은 감동과 울림의 원천이다. 이제 이정인은 그간 그가 대패질로 나무를 깎을 때면 이상하게 제 살을 깎는 것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충분하게 그의 화폭에 나무를 향한 그 뜨거움과 지극한 애정이 뜨겁게 물고기에게 불어 넣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다양한 표현과 양식을 하나로 아우르는 시점에 도달해 있음을 전해주고 싶다. 이정인의 나무는 이미 "치유" 하는 힘을 지녔고, 그 나무는 우리를 울림의 세계로 충분하게 인도하고 있지 않는가?

-김종근 평론글 중 발췌-